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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죽음이다3

書娥 詩人 2011. 3. 25. 04:36

 

 

 

이것이 죽음이다. 들향기 
  

그것은 극도로 절망한 생물이 내는 극한의 울부짖음이었다. 나는 이제 절망이 무엇인지 나의 이런 상태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알게 되었다.

  이제 너무 늦었지만 그레그는 아내를 달래려 했고 아내의 어깨를  감싸안으려 했으며 아내를 방에서 데리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방 안 깊숙이 들어왔다.... 하지만 내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고통과 회환에 잠겨 방 안 모든 곳에 있었고 에밀리는 시체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상냥하기 까지 한 표정으로 시체를 쳐다보고 손을 뻗어 부어오른 내 뺨을 어루만지기까지 했다.

 

  " 아, 에드."

  그녀가 중얼거렸다.

  죽기 직전만큼 격렬한 고통이 다시 나를 덮쳐 왔다. 목이 조이고 머리가 끔찍하게 부풀어 올랐다. 전신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나는 다시 온몸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내 뺨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길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레그가 아내를 따라와서 아내의 어깨에 손을 또 얹고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아내의 표정이 허물어져 내렸다. 아내가 또다시 울음을 토해 내며 두 팔로 시체의 다리를 얼싸안고 매달렸다. 아내는 울부짖고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했는데, 너무 빠른 데다 엉망이어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

 

  그 바보 같은 그레그가 결국 아내를 떼어 냈다. 그러나 그는 시체에 매달려 있는 아내를 떼어 내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해냈고 아내를 방에서 데리고 나가며 문을 닫았다. 시체는 한동안 흔들거리며 빙빙 돌았지만 다시 모든 게 조용해졌다.

 

  최악의 상황 이었다.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여기서 수많은 밤과 낮을 보내는 것도 끔찍하겠지만 이보다 더 끔찍하지는 않을 터였다. 나처럼 어리석은 영혼은 자신이 죽은 방에서 얼마나 더 떠돌아야 풀려나는 걸까? 에밀리는 계속 살아갈 터였다. 이 집을 팔고 그리고 서서히 모든 것을 잊을 터였다. ( 나도 서서히 잊겠지만 말이다.) 아내와 그레그는 결혼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에밀리는 이제 서른여섯밖에 안 됐으니 엄마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날 밤의 나머지 시간 동안은 줄곧 집의 다른 곳에서 아내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결국 경찰이 왔고 시체 공시소에서 나온 두 사람이 흰 가운을 입고 방으로 들어와 밧줄을 자르고 나를 내리는 동안 냉혹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들은 부서진 장난감을 넣듯 길다란 나무 손잡이가 달린 데다 나뭇가지로 만든 커다란 타원형 바구니에 나를 집어넣은 다음 방에서 가지고 나갔다.

 

  저 시체를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체와 함께 불타거나 캄캄한 관 속에서 아무 생각도 못하고 영원히 갇혀 있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시체는 방에서 나갔고 나는 뒤에 남았다.

 

  의사가 왔다. 시체가 실려 나간 뒤에 방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나는 아래층에서 나는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토니도 와 있었다. 퉁명스러운 단음절어로 말하는 그의 특이한 음성이 가끔 끼어들었지만 한동안은 주로 의사가 말을 했다. 의사가 에밀리에게 진정제를 주려 했다. 에밀리는 계속 울부짖으며 심중의 말을 다하려면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듯이 미친 사람처럼 빨리 그리고 쉴새 없이 말을 쏟아 냈다.

 

  " 내가 그랬어요! 내가 그랬어요 ! 내가 죄를 받아야 해요 ! "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그렇다. 그건 내가 원하고 기대했던 반응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반응을 보자 끔찍했다. 내 생에 마지막 순간에 꿈꿨던 모든일이 이루어졌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 나는 에밀리에게 저런 고통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결국 에밀리를 안정 시켰고 구깃구깃한 푸른 제복을 입은 경찰이 그레그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은 그레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레그가 말하는 동안 경찰은 다소 심술궂은 얼굴로 아직 들보에 매여 있는 남은 밧줄을 쳐다봤다. 그레그가 설명을 마치자 경찰이 물었다.

 

  " 이 사람의 친한 친구이십니까?"

  " 그보다는 이 사람의 아내와 더 친합니다. 우리 가게에서 일하거든요. 저는 뉴욕로에 비블로 라는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음, 그런데 대체 왜 저 여자를 여기 들어오게 하신겁니까?"

그레그가 미소 지었다. 의기소침한 데다 당황한 듯한 미소였다.

" 저 여자가 저보다 힘이 셉니다. 힘이 센 편에 속합니다. 늘 그래왔죠 "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닫고 다소 놀랐다. 그레그는 허약한 편에 속하는 반면 에밀리는 상당히 힘이 셌다. ( 나도 다소 허약한 편에 속했던 것 같다. 에밀리는 우리 둘보다 힘이 셌다.)

" 이 사람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짐작이 가는 게 있으십니까?"

경찰이 물었다.

" 자기 아내와 제 사이를 의심한 것 같습니다."그레그는 이 문장을 미리 생각해 둔 게 틀림없었다. 그는 이 순간이 올 것을 알고 오래전에 이 문제를 밝히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그는 강렬한 빛이라도 비추는 것처럼 이말을 하는 내내 눈을 깜빡거렸다.

"그런일이 있었습니까?"

순간 경찰이 그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예."

"그렇다면 저 여자가 이혼을 고려하고 있었나요?"

"아니요. 그녀는 제가 아니라 자기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남자 저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한 거죠?"

"에밀리는 이 남자 저 남자와 자지 않았습니다. 어쩌다가 한 번씩 아주 드물게 저와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레그가 에밀리를 감싸듯 첫 문장을 강조하며 말했다.

"이유가 뭡니까?"

"위안을 얻기 위해서였죠. 에드는 함께 살기에 쉬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울해 했고 요즘 더 심해졌습니다."

 

  그레그도 들보에 감겨 있는 밧줄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는  밧줄이 나이기라도 한 것 처럼 그 앞에서 말하는게 어색해 보였다.

"쾌활한 사람들은 자살을 하지 않죠 "

경찰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에드는 대체로 우울해했고 가끔씩은 이유없이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업에도 영향을 미쳐서 손님들이 줄었습니다. 그는 에밀리를 힘들 게 했지만 에밀리는 그를 떠나지 않았고 그를 사랑했습니다. 이제 그녀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 두분이 결혼을 하시는것 아닌가요?"

"아, 아닙니다. 우리가 에드를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살처럼 보이게 한 뒤 우리가 결혼하려고요?"

그레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혼 하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기혼이신가요?"

"전 동성연애자입니다."

경찰도 나보다 더 놀라지는 않았으리라.

"몰랐습니다."

경찰이 말했다.

"저는 친구와 살고있습니다. 아래층에 있는 젊은 청년말입니다. 저는 이성과도 사랑을 나눌 수 있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에밀리를 아주 좋아하고 그녀가 에드와 그런 생활을 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육체 관계는 아주 뜸했고 그나마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레그가 말했다.

 

  아, 에밀리. 아, 가엾은 에밀리.

"손번 씨도 당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경찰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좋습니다. 나갑시다."

경찰이 화난 듯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방을 둘러본 후에 이렇게 말했다.

  두사람은 방에서 나갔고 문은 그대로 열려 있었다. 두 사람이 계단을 내려가며 나누는 대화가 계속 들려왔다.

"이 집에서 함께 밤을 보내 줄 사람이 있습니까? 손번 부인 혼자 있지는 못할 텐데요."

경찰이 먼저 이렇게 말했다.

"그레이트배링턴에 에밀리의 친척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전화를 해 두었습니다. 이제 누군가 도착할 겁니다."

"그때까지 여기 계셔 주시겠습니까? 의사는 손번 부인이 잠을 잘 거라고 했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물론입니다."

내가 들은 것은 여기까지다. 아래층에서 두 남자의 웅얼거리는 말소리가 한동안 더 들려오다 멈췄다. 차 여러대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 단순한 행동을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나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잘 알지 못했다.

그날밤 경찰이 떠난 직후에 그레그가 한 번 더 그방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