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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죽음이다2

書娥 詩人 2011. 3. 25. 04:39

 

이것이 죽음이다. 들향기 
  

조심스러운 속삭임이 오가더니 잠시 후에 그레그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에드? 에드 어서 나와요, 에드. 우리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눕시다."

  문고리가 돌아가고 문이 덜컥거리더니 그레그가 불안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 안에 들어가야겠어요. 그 방법뿐이에요. 다른 열쇠는 없어요?"

"2 층 잠금장치는모두 같은 열쇠로 열리는 것 같아요, 잠깐만요."

그말은 사실이었다.  간단한 곁쇠로 이 집 안의 방문을 모두 열수 있었다,  에밀리가 다른 열쇠를 찾으러 가는 소리가 들렸다.  머지않아 그들이 함께 들어올 터였고 나는 에밀리가 들어오는 것이 너무 싫고 끔찍해서 뿌연 영상처럼 방 안을 채우고 있는 내 몸이 떨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적어도 나라도 볼 수 없으면 좋으련만.  살아 있을 때는 눈꺼풀이 있어서 보기 싫은 것에는 눈을 감을 수 있었지만 이제 나만 온전히 존재해 있을 뿐 눈을 감을 수도 생각을 멈출 수도 없었다.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리는 소리가 내 목에 거친 금속 날을 대고 문지르는 것처럼 들렸다.  목이 있었던 기억이 났다.  고통이 너울거리며 부풀어 올랐다.  그 틈으로 에밀리가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고 그레그가 "안에 열쇠가 있어요. 반대편에 말이에요." 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 아! 하느님! 아, 그레그, 그 사람이 대체 무얼 하고 있을까요?"

" 이문의 경첩을 빼내야겠어요. 토니를 불러요. 도구상자를 가져오라고 해요."

그레그가 말했다.

"열쇠를 안으로 밀어 넣으면 안 돼요?"

물론 그는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용하고 단호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서, 에밀리,"

나는 그가 문을 억지로 열 생각이 없음을  눈치 챘다. 그는 문이 열리는 손간 그녀를 멀리 보낼 작정이었다. 아, 좋아, 아주 좋다고!

"알겠어요."

  아내가 회의적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녀가 토니에게 전화를 하려고 가는 소리가 들렸다. 검고 짙은 눈썹에 숱이 엄청나게 많은 검은 머리 그리고 올리브색 살결의 토니는 그레그 집에서 사는 일종의 잡역부였다.  그는 집 주변을 돌보고 고가구를 손보는 데 아주 능숙했다. ( 에밀리 말에 의하면 말이다. ) 그러니까 페인트칠 을 벗겨 내고 부서진 부분을 다시 맞추는 것 같은 일 말이다.

 

  그레그가 에밀리가 돌아오기 전에 문을 열려고 애를 쓰면서 열쇠가 긁히고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불현듯 그레그에 대한 예기치 못한 호의와 애정을 느꼈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내 아내와 기회주의적인 애정 행각을 벌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이제 그레그가 아내와 결혼 할까? 두사람은 이 집에서 살 수 있을 터였다.  지금보다 고가구를 더 많이 들여놓고 말이다. 아니면 이 방에 너무 끔찍한 기억이 있어 에밀리가 이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이사할지도 몰랐다.  아내는 이 집을 싼 가격에 내 놓아야할 터였다.  부동산업자인 나는 누군가 자살한 집은 팔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두들 우스갯소리로 넘겨 버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초자연적인 존재를 두려워 했다.  그러니 이 방에 유령이 나타난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터였다.

 

  그때 나는 결국 이 방에 나타난 유령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나였다 !  나는 유령이다. 이 단어를 처음 입에 올리면서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나는 다름 아닌 유령이었다.

 

  아, 얼마나 참담한가 ! 뼈도 없고 살도 없이 고통만 느끼는 존재가 되어 여기서 떠돌다니, 흰 곰팡이가 퍼져 나가듯 방 전체로 퍼진 심령체 같은 것이 되어 밤낮으로 혼자 그리고 끝도 없이 왔다가는 낯선 이들을 비참하게 지켜봐야 하는 어리석은 방관자가 되다니,  아내는 이 집을 팔 것이고 팔아야 했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이게 벌을 받는 걸까? 자살한 데 대한 벌, 자신의 목숨을 끊은 데 따른 이 지독한 외로움, 중력보다 더 큰 힘에 갇혀 영원히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목숨을 끊은 장소에 있어야 하다니.

 

  이런 비참한 생각에 빠져 잠시 정신을 팔고 있을 때 문 안쪽의 열쇠가 갑자기 요동쳤다. 열쇠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떨리고 흔들리더니 툭 튀어 나왔다.  열쇠는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 하는 것처럼 탁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다음 순간 문이 열리며 잿빛이 된 그레그의 얼굴이 내 보랏빛얼굴을 응시했다. 그의 놀라움과 경악스러움은 이내 혐오감 ( 경멸의 빛도 담겨 있었을까?) 으로 바뀌었다.  그는 뒤로 물러서서 문을 닫았다. 열쇠를 돌려 문을 다시 잠그는 소리가 들리더니 서둘러 아래층 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시계는 9 시 58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그는 아내에게 설명 하고 있을 터였다. 지금쯤 물 한 잔을 주며 아내를 진정시키고 있을 터였다. 지금쯤 그가 경찰에 전화를 걸 터였다. 지금은 경찰에 두사람의 불륜을 알릴 것인지 말 것인지 의논을 할 터였다. 두 사람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안 돼에!"

시계가 10 시 7 분을 가리켰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아직 경찰에 알리지 않았단 말인가?

아내가 비틀거리며 성급히 2 층으로 올라왔다. 아내가 내 이름을 부르며 문을 마구 두드렸다. 나는 방 한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아내가 문을 두드리는 주먹이 내 몸에 닿는 것 같았고 나는 아내가 들어올까 봐 겁이 났다. 제발 하느님, 그녀가 들어오면 안 됩니다, 제발 들어오지 않게 해 주세요 ! 아내가 저지른 잘못에도 그 무엇에도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저 여자가 절 보지 않게만 해주세요! 제가 저 여자를 보지 않게 해 주세요 !

 

  그레그는 아내와 함께 있었다, 아내가 그에게 소리를 질렀고 그는 아내를 설득했으며 아내가 뭐라고 하자 그가 반박했고 아내가 요구하자 그가 거절했다.

  " 열쇠를 이리 내놔요. 열쇠를 이리줘요."

그가 그녀를 막고 그녀를 멀리 데려갈 게 틀림없었다. 그가 그녀보다 힘이 셀 테니까 말이다.

그가 아내에게 열쇠를 건넸다.

안돼. 이건 견딜 수 없어, 이건 그 무엇보다 끔찍한 일이야.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지른 비명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건 사람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